상추씨 | ||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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등록일 | 2017-07-03 오후 3:02:35 | 조회수 | 1273 |
ugatv0957@naver.com | 작성자 | 관리자 | |
출처 |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| ||
조혜란 | 사계절 | 2017
어린이이야기나 그림책에서는 온갖 것들이 의인화된다.
토끼들이 옷을 입고 두 발로 걷고
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건 기본이다.
민들레 같은 식물, 돌멩이 같은 무생물도
스스로 움직이고 말할 수 있다.
모든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고
독자적인 존재감을 부여하는 일,
그것이 어린이 책의 가장 큰 힘이다.
『상추씨』는 그런 힘 있는
생명창조의 선상에 있는 책이다.
우리 밥상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채소인 상추.
키우기 쉽고, 값싸고, 요리랄 것도 없이
대충 먹어도 되는 상추.
그런 상추를 이 작가는 어떻게 살려내고 있을까.
표지를 보면 상추 두 장 위에
삼겹살 한 점, 생선회 한 점이 놓여 있다.
상추는 바야흐로 그 고기들과 함께
사람 입 속으로 사라질 참이다.
어떻게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장면일 수도 있다.
이 사이에서 으깨짐으로 생이 마감되는 운명 아닌가.
하지만 상추들은 다소곳이 눈을 감은 채
옅은 미소를 띠고 있다.
팔이나 손이 그려진 건 아니지만
고깃점들을 감싸 안고 있는 것 같다.
빨간 머리 아기처럼 보이기도 하는
생선회를 안은 상추의 뺨에는
하트 모양의 홍조까지 그려져 있다.
이 아이들은 참 행복해 보인다.
상추로서의 운명을 전면적으로 수락하며
할 일을 다 하는 데서 오는 성취감을 보여주는 걸까?
각종 천을 정성껏 가위질하고 꼼꼼하게 바느질해
상추를 살려낸 작가는
그런 몸 바침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했던 걸까?
돌담 안에 뿌려진 상추씨에서
싹이 나고 잎이 자라는 과정은
천을 이용한 의인화 일러스트 안에서
사랑스럽게 펼쳐지지만,
그 생생한 얼굴의 상추들이 결국 뜯겨나가
밥상 위의 먹을거리로 놓이는 장면은
엄정한 자연의 섭리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.
동물이든 식물이든 인간이든,
살아가는 일 자체가
남을 위해 몸을 바치는 일이란다.
이런 말이 들리는 듯하다.
하지만 그건 비극이 아니다.
꽃 피운 상추에서 받은 상추씨가 그 삶을 되돌려준다.
그렇게 생명은 이어져가고
그 가운데 한 몫을 담당하는 일은
충분히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
상추들이 말해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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첨부파일1 | 상추씨.jpg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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